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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을 보는 아내 천주산사 2013.11.10
첨부화일 : 없음
점을 보는 아내


당신의 아내가 점을 본다면, “나와 남편 중 누가 먼저 가나?”를 알고 싶어 한다면, 우선 드는 생각은 무엇인가? “아내가 나 떠난 후의 삶을 겁내는 구나” “양말 하나 못 찾아 신는 나를 염려하는 구나” 생각한다면 당신은 행복하다. 아내의 사랑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60대 중반의 여성독자가 전화를 해서 ‘점을 본다’는 말을 했다. 점집을 찾아가 ‘남편과 나, 누가 먼저 가나’를 묻는다고 했다. 그 주부는 남편 먼저 간 후의 쓸쓸한 삶을 걱정하는 것도, 자신이 먼저 간 후 홀아비 남편의 궁상스런 삶을 걱정하는 것도 아니었다. 남편이 먼저 가면, 집안의 허접 쓰레기들 다 내버리고 깨끗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남편이 여기저기 너무나 어질러 놓아요. 치우고 싶어도 남편이 버럭 화를 내서 치우지도 못해요. (남편) 성격이 불같아요. 때리는 것만 없어도 참을 만할 텐데 …”남편이 먼저 갈 경우, 그가 누리고 싶은 것은 ‘해방’이었다. 집안정리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만큼 독재적인 남편이 떠나고 나면, 생애 처음으로 홀가분하고 호젓한 삶을 맛보고 싶은 것이었다. 결혼생활 40년이라는 그는 말했다.

“몇십년 전부터 집을 나가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서 못 나갔어요. 막내가 고등학교 졸업하면, 대학 가면, 결혼하면 … 하며 미루다 이 날까지 왔어요.”남편의 말에 반대라도 하면 ‘말대답 한다’고 눈에 불이 번쩍 나도록 주먹이 날아들고, 발길로 차이기도 하는 데, 60 넘은 나이에 맞고 산다는 말을 차마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남편은 아내의 이런 절망감을 알까, 점괘는 어떻게 나왔을까?수명이 길어지면서 노년의 부부관계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유엔인구기금의 ‘2013 세계인구현황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은 85세, 남성은 78세이다. 미국의 기대수명(연방질병통제센터 자료)은 여성 81세, 남성 76세. 나이 65세를 기준으로 하면 여성의 기대여명은 20년, 남성은 18년. 60대에 접어든 사람들은 보통 80대 중반 정도 산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자녀들이 집을 떠나고 나면 50대부터 30년 정도를 부부가 단둘이 살게 된다. 부부사이가 나쁘면 그 긴 세월 매일 얼굴 맞대고 사는 자체가 지옥이다. “앞으로 20~30년, 이렇게 살다 생을 마쳐야 할까” 회의가 생기고, ‘아니다’ 싶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황혼이혼이다. 결혼생활 20년 이상인 중장년층 부부들이 자녀의 독립을 계기로 이혼하는 케이스가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늘고 있다. 자녀 때문에 참고 살던 사람들이 자녀가 떠나자 더 이상 같이 있어야 할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사람의 인연을 겁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겁이란 영원과도 같은 장구한 시간. 둘레가 40리 되는 바위에 천상의 선녀가 100년에 한번씩 내려와 잠자리 날개 같은 옷자락으로 스쳐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지는 시간을 1겁이라고 한다. 사람의 인연은 가볍지 않아서 길 가다 스치는 것도 500겁의 인연, 부부는 무려 7,000겁의 인연이 있어 맺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굳이 ‘겁’을 동원하지 않아도, 생각해보면 남편/아내와의 만남과 결혼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어떻게 ‘당신’과 인연이 닿았을까 싶은 경이로움에 우리 모두 감동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맺어진 수십년 부부의 연을 끊어버리는 것도, 원수처럼 으르렁 대며 이어가는 것도 7,000겁 인연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나이 들수록 부부사이가 좋아야 건강하게 장수한다는 것은 여러 연구결과로 확인 되었다.

부부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누가복음에 나오는 황금률 즉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가 정답이다. 가부장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장년층 한인남편들이 아내가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자신이 먼저 한다면, 평생 그런 대접 받아보지 못한 아내들은 감격할 것이다. 황혼의 아내들은 거창한 걸 기대하지 않는다.

“내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
꽃꽂이도
벽에 그림 달기도 아니고
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
그냥 설거지일 뿐.”

<황동규, ‘버클리 풍의 사랑 노래’ 중에서>이 정도면 족하다. 그렇게 서로 마음을 들여다보며 오순도순 산다면 황혼은 신혼과는 또 다른 맛이 있을 것이다. 고즈넉한 안정감이다. 아내가 점을 보러 갈 일은 없을 것이다.<권정희/미주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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