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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육추(三細六麤) 천주사 201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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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육추(三細六추)


진실에서 어긋난 마음(不覺)으로 인해 우선 3가지 마음 상태가 뒤따른다. 무지(無智)로 인해 마음이 출렁거려 업(業)이 시작되는 단계(無明業相), 출렁거린 마음이 보는 자로 자리 잡는 단계(能見相=轉相), 보는 자로 인해 보이는 것들이 자리잡는 단계(境界相=現相)가 그것이며, 이것이 3가지 미세한 단계들(三細)이다.

이어 여섯 가지 거친 마음 상태가 꼬리를 문다.

보이는 것들에 대해 마음이 좋다든가 좋지 않다. 라는 분별을 일으키는 단계(智相), 그 분별심으로 인해 좋다고 여긴 것에 대해서는 즐거움을 느끼고 좋지 않다고 여긴 것에 대해서는 괴로움을 느끼는 마음이 이어지는 단계(相續相), 즐겁거나 괴로운 느낌에 마음이 달라붙는 단계(執取相), 그 집착 때문에 즐겁거나 괴로움을 주는 것들에 붙여진 이름에 해당하는 그 어떤 불변의 것이 실제로 있다고 여겨 이름 따라 분별하는 단계(計名字相), 분별된 이름을 좇아나가 이 이름 저 이름에 집착하면서 진실을 등진 갖가지 행위를 하는 단계(起業相), 그 행위들로 인해 초래된 불안과 혼란과 고통에 휘말려 자유와 평안을 상실한 단계(業繫苦相)가 그것이다.

이러한 삼세육추설이 깨달음의 소식과 관련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참선(參禪)하여 깨달음을 연다는 것은 일종의 인식혁명을 이루는 측면을 지닌다. 우리 마음에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요리하는 틀 혹은 버릇이 본능처럼 자리잡고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세계 해석의 틀이나 버릇이 견고(堅固)하게 자리하고 있다. 더욱이 그 틀이나 버릇은 사물의 진실을 근본적으로 왜곡시켜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인간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삼세육추는 그 인식의 틀 혹은 버릇의 내용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교훈이 마련된다.

참선하여 깨닫는다는 것은 그 인식 왜곡의 틀을 깨뜨리고 근본적으로 교정하는 일이다. 마음과 삶을 진실로부터 유리(遊離)시켜 온갖 혼란과 고통의 노예로 이끌어 가는 그 완고한 인식의 버릇을 말끔하게 바로잡는 혁명적 전환이 바로 깨달음이다.

강고한 집착과 끝없이 번지는 탐욕과 부정(否定)으로 관계 맺던 이 세상이, 그때는 전혀 새로운 관계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그 새로운 관계의 내용을 압축하여 지혜와 자비라 한다.

기신론(起信論)은 삼세육추설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깨달음은 그 어떤 신비 체험상태로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는 것.

진실(眞實)을 왜곡(歪曲)하던 인식(認識)의 선입(先入)틀, 혹은 버릇을 근본적으로 교정(矯正)하여 세상과의 관계를 새롭게 전개하는 사람, 그가 옳게 깨달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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