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혼(魂) 천주사 2015.11.12
첨부화일 : 없음
박근혜 대통령이 '혼(魂)'이라는 말로써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 '혼(魂)'은 '넋'과 같은 뜻의 말이다.

고려 말 대학자 이암 선생의 ‘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國猶形 史猶魂)’라는 말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말은 학계의 논란을 빚고 있는 <단군세기> 서문에 나오며
문정공 행촌 이암 선생이 바로 이 책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단군세기>는 단군 왕검부터 47세 단군 고열가에 이르는 기록으로
이를 볼 때 박 대통령은 상고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단군세기 서문]

나라를 위하는 길에 사기(士氣)보다 먼저인 것이 없고,
사학(史學)을 하는 것보다 급한 것이 없으니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사학(史學)이 밝지 아니하면 사기(士氣)를 펼 수 없고,
사기를 펼 수 없으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고 정사(政事)와 법령(法令)이 갈라진다.

무릇 사학(史學)의 법(法)은 내칠 것은 뿌리치고,
좋은 일은 기리며, 사람과 사물을 저울질하고,
시대와 상황을 논하고 진단하는 것이니
만세(萬世)의 표준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

이 나라의 백성이 살아온 지도 오래 되었도다.
세상이 창조된 이래 질서가 잡히고 또한 더하고 고치고 증명하여 왔다.

나라는 역사와 더불어 존재하며
사람은 정사(政事)와 더불어 갖춰지고 드러나는 것이니
모두가 자아(自我)에 우선해야하며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바이다.

아! 정치(政治)는 마치 기(器)와 같고,
사람은 도(道)와 같은 것인데 기(器)가 도(道)와 떨어져서 존재할 수 있겠는가?

나라는 마치 형(形)과 같고 역사는 혼(魂)과 같은데
형(形)이 혼(魂)을 잃어버리고 보존할 수 있겠는가?

도(道)와 기(器)를 더불어 닦는 것은 나 자신이며
형(形)과 혼(魂)을 더불어 갖추는 것도 나 자신이다.
그러한 까닭에 천하의 모든 일은 먼저 나 자신을 아는 데에 있다.
그러한 즉 나를 알고자 하면 스스로 어찌 시작해야 하겠는가?

무릇 삼신(三神)의 도(道)는 대원일(大圓一)의 뜻에 있다.

조화(造化)의 신(神)이 내려 나의 성(性)을 이루고,
교화(敎化)의 신(神)이 내려 나의 명(命)이 되며,
치화(治化)의 신(神)이 내려 나의 정(精)이 된다.

그러한 까닭에 오직 사람만이 만물 가운데 가장 귀하고 가장 존엄한 것이다.

무릇 성(性)이라는 것은 신(神)의 뿌리다.
신(神)이 성(性)의 근본이 되는 것이지만 성(性)이 아직 신(神)자체는 아니다.
기(氣)가 밝게 빛나며 어둡지 않을 때에 진성(眞性)이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신(神)은 기(氣)를 떠날 수 없고, 기(氣)도 신(神)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내 몸 안에 있는 신(神)이 기(氣)와 더불어 합하여진 뒤에라야
내 몸 안의 성(性)과 더불어 명(命)을 볼 수 있다.

성(性)은 명(命)을 떠나서 있을 수 없고 명(命)도 성(性)을 떠나 있을 수 없는 것이니,
내 몸 안의 성(性)과 명(命)이 더불어 합하여진 뒤에라야
내 몸이 비롯되지 아니한 신(神)의 성(性)과 비롯되지 아니한 기(氣)의 명(命)을 볼 수 있다.

그러한 까닭에
성(性)의 영각(靈覺)은 천신(天神)과 더불어 그 근원(根源)을 같이 하는 것이며,
명(命)의 현생(現生)은 산천(山川)과 더불어 그 기(氣)를 같이 하는 것이며,
정(精)의 영속(永續)은 창생(蒼生)과 더불어 그 업(業)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를 잡으면 셋이 포함되어 있고(執一含三),
셋이 모이면 하나로 돌아간다(會三歸一)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정심(定心)하여 바뀌지 않을 때 이를 진아(眞我)라고 하며,
신통(神通)하여 모든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이를 일신(一神)이라고 하니,
진아(眞我)는 일신(一神)이 거처하는 궁(宮)이다.

이러한 참된 근원을 알고 법에 의거하여 수행(修行)을 하면
길하고 상서로운 것이 저절로 이르며 광명이 항상 비추게 되는 것이니
이는 곧 하늘과 사람이 서로 더불어 어우러져
삼신(三神)의 계율(戒律)과 맹서(盟誓)를 묶어서 잡아야
비로소 능히 하나(一)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성(性), 명(命), 정(精)의 무기(無機)가 삼신일체(三神一體)의 하느님이며,
우주 만물과 더불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는 것이며,
심(心), 기(氣), 신(身)과 더불어 자취 없이 오래토록 존재하는 것이며,
감(感)식(息), 촉(觸)의 무기(無機)는 한인(桓因)의 주된 조상(祖上)이시니,
세계만방과 더불어 하나로 베풀고 동락(同樂)하여
천(天), 지(地), 인(人)과 더불어 무위(無爲)하여 스스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가르침을 세우고자 한다면(立敎) 모름지기 먼저 자아(自我)를 세우고(立自我),
형(形)을 바꾸려 한다면(革形) 모름지기 먼저 무형(無形)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니(革無形),
이것이 바로 나를 알고(知我) 홀로 하나의 도(道)를 구하는 것이다.(求獨之一道)

오호 슬프도다!
부여(夫餘)에 부여의 도(道)가 없어서 훗날 한(漢)나라 사람들이 부여에 쳐들어왔고,
고리(高麗)는 고리의 도(道)가 없으니 후에 몽고(蒙古)가 고리에 쳐들어왔다.
만약 그때에 이보다 먼저 부여의 도(道)가 있었다면
한(漢)나라 사람들은 자기의 한나라로 돌아갔을 것이며,
고리(高麗)에 고리의 도(道)가 있었다면 몽고가 자기의 몽고로 돌아갔을 것이다.

오호 슬프도다!
전에 오잠이나 유청신과 같은 무리들의 도리에 어긋나는 짓은
몰래 백귀(百鬼)와 더불어 밤에 돌아다니는 것과 같으며,
남생(男生)이나 발기(發岐)의 역심(逆心)은 서로 응하여 세력을 합한 것과 같으니,
나라를 위한다는 것은 어찌 스스로 도(道)와 기(器)를 다 잃고
형(形)과 혼(魂)을 모두 없어져버린 때를 당하고서 스스로 평안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 다른 나라 사람들이 정사를 간섭함이 갈수록 더욱 심해져서,
임금 자리를 물려주고 다시 세우는 일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제멋대로 가지고 놀고 있는데
우리 대신(大臣)들은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당하고만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라 안에 역사가 없고 형(形)이 혼(魂)을 잃었기 때문이다.

일개 대신(大臣)의 능력으로는 나라를 가히 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나,
바로 나라 안의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다 스스로 나라를 구할 것을 다짐하고 그 할 바를 찾을 때에
나라를 구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것이고, 그런 후에야 비로소 나라를 구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라를 구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앞에서 말했듯이 나라에는 역사가 있고 형(形)은 혼(魂)이 있어야만 한다.

신시개천(神市開天)은 스스로 그 정통(正統)이 있었고
나라가 정통(正統)에 의해 세워졌으며
백성들은 그 정통에 의해 흥하게 되는 것이니
사학(史學)이 어찌 중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 단군세기의 서문을 쓰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노라.

공민왕12년(1363) 계묘년 10월3일 홍행촌(紅杏村)의 늙은이가
강도(江都)의 해운당(海雲堂)에서 쓰다.

이름 비밀번호
코멘트
이미지가 안보이면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왼쪽 이미지의 영문,숫자 4자리를 입력하세요.)
이전글 : 삼세육추(三細六&#40612;)
다음글 : 화쟁사상(和爭思想)

Untitled Docu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