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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쟁사상(和爭思想) 천주사 201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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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쟁사상(和爭思想)


화쟁(和爭)은,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617∼686)의 중심 사상이다.
원효 사상의 근본을 이루는 화해(和會)와 회통(會通)의 논리체계를 이르는 말로,
엄밀히 말하면 원효로부터 시작되어 한국불교의 전통으로 이어 내려온 사상이다.
연기론(緣起論)과 실상론(實相論)을 바탕으로 하여
특정한 교설이나 학설을 고집하지 않고 비판과 분석을 통해
보다 높은 가치를 이끌어내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모순과 대립을 하나의 체계 속에서 다루므로 화쟁(和爭)이라 하였다.

원효가 남긴 저술에 많이 나오는데, 특히 《대승기신론소》에
‘마치 바람 때문에 고요한 바다에 파도가 일어나나 파도와 바다는 둘이 아니다.
우리의 일심(一心)에도 깨달음의 경지인 진여(眞如)와 무명(無明)이
동시에 있을 수 있으나 이 역시 둘이 아닌 하나이다.’라고
그 원리가 잘 나타나 있다.

일승(一乘)과 삼승(三乘), 중관(中觀)과 유식(唯識) 등이 화쟁의 대상이다.
화쟁의 방법은 개합(開合)·여탈(與奪)·입파(立破)의 논리를 이용한다.
개합은 나열했다 합하는 것을,
여탈은 주었다 빼앗는 것을,
입파는 세웠다 무너뜨리는 것을 말한다.
곧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 논리에 근거하여
종합과 회통을 추구하는 것이 화쟁(和爭)의 주된 특성이다.

이러한 사상의 배경은 당시 중국불교가
이념과 학문에서 대립하고 있던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사상은 뒤에 중국과 일본불교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한국불교의 뚜렷한 특징을 이루게 되었다.

국외적으로는 중국의 화엄종(華嚴宗)을 집대성한
법장(法藏)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 제자인 징관(澄觀)도 원효를 높이 평가했다.
국내에서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사상가
의천(義天)과 지눌(知訥)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들은 모두 원효를 높이 평가하고 숭앙했으며,
당시 대립적인 위치에 있던 선(禪)과 교(敎)를 회통시키기 위해
의천은 교관병수(敎觀幷修)를,
지눌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함으로써 화쟁정신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 영향 아래 조선시대에는
함허(涵虛)와 휴정(休靜)의 삼교조화론(三敎調和論)으로 발전했다.
본래 원효는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을 저술하여
화쟁(和爭)의 의미를 확고히 하였으나,
이 문헌은 오늘날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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